기사제목 [김규남 칼럼] '캄비세스 왕의 심판'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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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남 칼럼] '캄비세스 왕의 심판'이 주는 교훈

기사입력 2025.03.2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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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남 박사 / 시인, 시조시인, 작가.

[아산신문] 사람을 뜻하는 한자인 사람 인(人)을 보면 서로 등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즉, 약육강식의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약자인 인간은 연대가 필요했고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 발전시켜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부합되는 법을 필요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법의 적용은 정의와 공정이라는 원칙으로 좀 더 좋은 세상을 바라는 인간의 바램과 함께 이를 바르게 적용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대법원 건물에는 ‘정의의 여신’이라는 청동상이 있다. 한손에는 법전을 들고 한손에는 양쪽이 균형을 이룬 저울을 들고 있다. 법의 집행에 있어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와 공정한 법 집행을 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형상물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법의 적용은 과연 그러할까? 공정과 신뢰를 잃었고 정의가 실종된 사극에서의 망나니 칼춤을 보는 듯한 사례가 허다하다. 

 

한쪽으로 치우친 불법적인 절차가 유행처럼 되더니 심지어 대통령에게까지 위법, 탈법적인 법 적용을 두 눈으로 보면서 힘없는 일반 소시민의 입장에서 설마 나는 하는 우려가 실제 공포로 엄습해 온다. 

 

EH-ca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영원한 대화”라고 했다. 따라서 고대에 공정한 법 집행과 부패한 재판관을 단죄함으로서 정의를 구현한 역사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저서 《역사》에 기록된 실화는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제군주 ‘캄비세스2세(Cambyses, BC 530~522)’는 피도 눈물도 없던 악명으로 유명하다. 죄인에 대해 가차 없는 형벌을 집행함으로써 정의를 세우려 했다. 

 

특히, 재판관의 부패 혐의가 적발되면 가장 강력한 처벌을 내렸다. 한 예로 당시 왕실 재판관이었던 ‘시삼네스(Sisamnes)’가 뇌물을 받고 부정한 판결을 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돈이 많은 자들은 큰 죄를 저질러도 사면되는 일이 반복되었는데 그를 매수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부정축재 한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이렇게 부패한 재판관은 시간이 지나며 더 많은 부를 이루었지만 상대적으로 억울한 피해자도 양산되었다. 

 

이렇게 계속된 그의 불법은 왕까지 알게 되어 캄비세스 2세는 일반범죄보다 훨씬 중형인 최고의 형벌 ‘생체박피형’을 내렸다. 실제 형장주위에는 그의 아들과 재판관들을 빙 둘러 세워놓고, 날카로운 칼로 네 명의 집행자들은 산채로 살가죽을 벗겨 그가 앉았던 재판관의 의자에 씌웠다.

 

시간이 흘러 처형 당시 아비의 손을 잡고 지켜보았던 아들 ‘오타네스(Otanes)’가 성장하자 왕은 아비에 이어 재판관으로 임명하면서 과거 부패했던 아비의 가죽 의자에 앉아 언제나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을 주문하며 당부한다.

 

"누군가 그대에게 악을 행하도록 충동한다면 그의 운명을 기억하라.

그대 아버지의 운명을 내려다보고 그의 운명이 그대에게 닥치지 않도록 하라."

 

아비의 마지막을 현장에서 목격했기에 아비의 마지막을 기억하면서 언제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관으로 좌고우면하지 말라는 교훈을 체험케 한 것이다.

 

명화 '캄비세스 왕의 심판'은 후일 벨기에 브뤼겔 시 의회의 요청으로, ‘제라드 다비드 (Gerard David, 1460~1523)’에 의해 두 장의 패널로 1498년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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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년 제라드 다비드에 의해 두 장의 패널로 제작된 '캄비세스 왕의 심판'


작품의 메시지는 공정한 재판을 외면한 부패한 재판관이 대가를 받는다는 강력한 경고이다. 단순한 죄에 대한 형벌을 넘어 불의한 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 묘사가 충격적으로 상징적인 뇌물수수와 처형장면이다. 

 

한 장은 왕의 옆에서 재판관이 뇌물을 받는 장면이며, 특히 다음 장에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거벗은 상태로 큰 탁자 누워 팔다리가 묵인 채 날카로운 칼로 집행자가 온 몸의 껍질을 벗기고 이를 체념할 수밖에 없는 한 죄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공포를 느끼게 한다. 

 

당시 이 작품의 제작 의도는 단순한 그림이라기보다 권력자들의 부패의 말로를 각인시키기 위한 강력한 경고의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작품을 통해 재판관의 법 집행은 정의롭고 공정하며 타협의 대상이 아니기에 이를 저버린 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뼛속깊이 성찰하게 했다고 본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과 명화를 통해 과거로의 여행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임을 항상 자각해야 하며, 이를 교훈으로 부패한 재판관이 나오지 않도록 감히 대답을 강요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과연 '캄비세스 왕의 심판'을 피할 준비가 되었는가? 또한 우리 스스로에게도 질문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불의한 재판관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만약 그러한 자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끔찍한 형벌을 집행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관은 공정한 재판을 바라는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공 녹을 먹는 자리에서, 휘황찬란한 법복과 그에 따른 항상 ‘존경’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명예만큼, 법에 따라 공정한 잣대를 행사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이는 오늘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에서도 많은 부분을 시사하고 있는데 명화 『캄비세스 왕의 심판』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오늘 회자되고 우려되는 불의한 재판이 현실이 된다면, 정의가 바로 서는 날 그들의 더럽고 추악한 만행과 죄악을 역사책에 기록하고 큰 바위에 아로새겨 광화문 광장에 설치해 모두에게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만 바라기는, 대한민국이 바로서길 염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애국공화시민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기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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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남 박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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