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신문] 우리는 살면서 이런 말을 많이 듣고 또 하고 삽니다. “창의성 교육이 중요하다” 혹은 “창의적인 사람이 되라”.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떻게 하면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지,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인간의 어떤 능력을 창의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먼저 창의성이라는 것이 타고 나는 것인가, 학습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이 저마다 다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시대마다 뛰어난 천재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만약 창의성이 그저 타고 나는 것이라면 학교나 가정에서 학생들에게 하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라’ 라는 말은 소용이 없겠지요. 다행히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건축학교 바우하우스(Bauhaus)가 남긴 유산들을 보더라도 개인의 창의성은 얼마든지 교육을 통해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창의성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경험해 보지도 못한 완벽히 새로운 무엇을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Creativity」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이 ‘신의 행위’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창의성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 이미 존재 하는 것들을 새롭게 연결하는 것일 뿐입니다.
즉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기존의 정보들을 충분히 수집하고 취사선택하여 나만의 방식으로 구조화하여 표현하는 능력을 창의성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Steven Jobs, 1955~2011)의 가장 대표적인 창조물 또한 핸드폰을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인 만진다(touch)는 감각을 통해 사람과 연결한 것입니다. 그 작은 발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일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 스티브 잡스가 학교에서 어떤 거창하고 대단한 ‘창의성 교육’을 받은 사람일까요? 학창 시절의 스티브 잡스는 오히려 학교 공부에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대신 그는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풍부하게 머리 속에 채워 나갔으며 공학도이면서도 제품 디자인을 위한 예술과 사람이란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우리 창의성 교육의 열쇠가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이기 위해선 우선 무엇이든 알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창의성만을 키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단순히 정해진 답을 외우는 학습이 아니라 다방면의 폭넓은 독서가 필요합니다.
또한 음악, 미술, 체육, 여행, 놀이와 같은 예체능 활동을 통해 독서로는 얻을 수 없는 시각적, 감각적 정보들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과 경험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연결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공동체와 인간에 대한 애정도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는 도전과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사회 분위기와 입시제도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충남의 학교에선 학생들의 창의성을 위해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고, 생각하고, 자신만의 언어를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있나요.
지금의 교육은 한 가지 정답과 한 가지 길만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명령에 의해 잘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 정답이라 배운 것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생각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을 기르고 있지는 않은가요.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업 국가 대한민국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아직까지도 한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충남 교육공동체 모두의 근본적인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가 이야기하는 ‘창의성 교육’은 실체 없는 메아리로만 울려 퍼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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