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신문] 아산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저는 일본에서 온 최수인이라고 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저희 아버지는 한국 분이고 어머니는 일본 분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른바 한국인과 일본인의 혼혈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일본인으로 자랐습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일본어를 사용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아버지를 위해서 한국말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독학으로 한국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한글도 못 읽었기 때문에 기초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듣기 연습으로 여러분도 좋아하는 한류드라마를 많이 봤습니다. ‘대장금’이나 ‘이산’같은 사극을 좋아했기 때문에, 제가 가장 먼저 외웠던 한국말은 “대비마마! 주상전하께서 납시셨사옵니다!” “오, 어서 듭시라 해라!”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로 아버지와 대화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교재를 구입해서 외운 문법이나 단어를 사용해서 어설픈 한국말로 아버지랑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문법뿐만 아니라 발음도 그리 좋지는 않아서 아버지께 “네 한국말은 이상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 한편에서는 ‘한국 사람처럼 이야기해서 아버지께 반드시 인정받자!’라고 다짐했습니다. 이것은 한국유학을 선택하는 계기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에 오자마자 중급2반에 배정되었습니다. 그때 같은 반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제게 아픈 상처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저를 성장시켜 준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저한테 일종의 편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혼혈이라고 말하니까, “아니, 한국 사람이 왜 한국말을 공부해?” “왜 집에서 부모님이랑 한국말로 얘기 안 했어?“ 라고 직설적으로 말했고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마다 ”너는 한국 사람인데 이런 단어도 몰라?“ 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나는 왜 한국에 왔을까? 나는 왜 혼혈인가? 나는 왜 한국말을 공부하고 있지?’ 이런 회의감마저 들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오히려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고민, 고민하다가 마침내 저는 제 고민을 제 부모님과 방 친구들에게 얘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이나 방 친구들은 저한테 “수인이는 자기 꿈을 향해 공부하면 되지” “수인이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라고 말해 줬습니다. 그런 말들은 제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걸 듣고 ‘나는 너무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너무 신경 쓰고 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나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도 똑같이 경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저한테 폭언을 하는 사람을 ‘폭언을 하는 사람’이라고 눈치로 보는 것보다도 “이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적극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급반 내내 그 사람과 지내면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가 운이 없는 것인지, 운명의 장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리를 바꿀 때마다 제 옆자리에는 항상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미운정, 고운 정’ 다 들면서 친구처럼 지내니, 언젠가부터 저한테 "너는 100% 완전 한국 사람이야" "너 진짜 재미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마음먹기에 따라 이토록 미운 상대방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지금은 소심한 최수인에서 대범하고 털털한 최수인으로 거듭 났습니다. 이렇게 달라지기까지, 제 곁을 지켜준 중급반 과 고급반 친구들, 그리고 제가 한국말을 처음 배울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주신 아버지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중급반, 고급반에서 제게 한국말을 친절하게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께도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