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은퇴는 기쁨일까? 아니면 슬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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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퇴는 기쁨일까? 아니면 슬픔일까?

기사입력 2018.01.0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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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교수.png▲ 김성윤 교수/단국대 정책과학연구소장, 정치학 박사
은퇴는 새로운 시작

우리는 보통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거나 자포자기를 한다. 연륜이란 구분 공간도 없고, 변한 것이 없으며 달라진 것도 없는데도 나이를 핑계 삼아 스스로를 내려놓는다. 은퇴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역시 만만치 않다. 이제 나이 들어 쓸모없는 사람쯤으로 생각한다.  

그 때문에 보통 은퇴자들은 일에서 손을 떼는 그 순간이 그들 생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먹고 놀면서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의 탐색이라고 생각하면 지금보다 보람 있는 일들이 눈에 보일 것이다. 모든 생물은 나이를 먹는다. 이런 현상은 누구나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우주의 섭리이다. 그렇게 보면 은퇴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없을 뿐이다.  

이와는 달리 노년에 불멸의 작품을 남긴 화가나 예술가도 많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천지창조”라는 벽화를 그린 미켈란젤로는 90세 나이로 세상을 뜰 때 까지도 “론 다니니의 피에타”를 제작 하였고 베르디가 오페라 “오셀로”를 작곡했을 때는 75세였으며, 괴테가 대작“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82세였다.  
 
해리 리버맨의 은퇴 스토리

해리 리버맨'(Harry Lieberman, 1880-1983)은 29세의 나이에 단돈 6달러를 가지고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기술도 익히지 못한 그는 처음에는 미국 뉴욕 할렘가의 유대인 지역에서 현금출납원으로 일을 하다가 곧 이직 후 직물업계에서 일을 하였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제과 도매업을 하면서 상당한 부자가 되었으며 77세가 되는 해에 은퇴하여 우리나라의 노인복지관인 시니어클럽에서 체스를 두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그와 함께 체스를 두던 친구가 병이 나서 나오지 못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 말을 듣는 리버맨은 할 일이 없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를 본 관리실 도우미가 "어르신, 그냥 그렇게 앉아 계시는 것보다 그림을 배워보시면 어떠세요?"라고 그림 그릴 것을 권했다. 이 같은 말을 들은 리버맨은 대뜸 "내가 그림을? 에이, 나는 이 나이까지 붓이란 걸 구경도 못해서 붓을 잡을 줄도 모르는데..."라고 대꾸하였다. 관리실 도우미 역시 "그야 배우시면 되지요."라고 재차 노인에게 권유하자 리버맨은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나는 일흔이 넘었는걸...."이라고 얼버무렸다.  

이 말을 들은 도우미가 리버맨에게 "제가 보기엔 어르신의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더 문제 같은데요?" 그리고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재미로 한 번 해보는 거예요. 재미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젊은 도우미의 권유로 리버만은 생전 처음 붓과 물감을 들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는 붓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림의 매력과 그림 그리는 새로운 세상에 푹 빠져들었다. 그가 복지관의 미술실에서 그림공부를 하는 동안 그의 지도교사 래리 리버스(Larry Rivers)는 리버맨이 그린 그림에 대해서만은 아무런 지적도 해주지 않았다.  

리버맨이 지도교사를 찾아가 왜 내 그림에 대한 어드바이스를 해 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교사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어르신은 이미 어르신의 방식대로 잘 하시고 계신데요.” 아마 지도 교사는 그의 그림 솜씨를 보고 천부적인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이런 인연으로 81살에서야 리버맨은 본격적으로 그림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10주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그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 하였다. 그의 그림소재나 주제는 어렸을 적 폴란드 고향의 기억을 살려낸 유태인의 서민 생활과 종교적 색채가 짙은 탈무드, 하시디즘( Hasidism), 구약성서 등이었다.  

마침내 리버만은 '원시의 눈을 가진 미국의 사갈'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냥 심심풀이로 그리기 시작했던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서 인기리에 팔렸다. 그림을 그리면서 하였던 그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즉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라". 이 같은 그의 충고는 100세 시대를 사는 은퇴자들에게 새롭게 다가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할뿐

리버만의 나이가 101세 때인 1977년 11월, 로스엔젤레스의 유명 전시관에서 22회 전시회가 열렸다. 이 노 화가는 개막식에 참가한 400여명의 내빈들을 전시실 입구에 서서 일일이 맞이하였다.  

그의 전시실을 찾은 내빈들 중에는 수집가와 평론가 및 신문기자를 포함한 사회의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나이와 달리 강렬한 원색으로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신비스러운 작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때 노 화가는 전시회를 방문한 내빈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나는 내가 백 한살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백 일 년의 삶을 산만큼 성숙하다고 할 수 있지요! 예순, 일흔, 여든, 혹은 아흔 살 먹은 사람들에게 저는 이 나이가 아직 인생의 말년이 아니라고 얘기해 주고 싶군요.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지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삶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젊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 늙었다고도 하지 않아요. 나는 다만 102년 동안 성숙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성숙이란 연륜과 함께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81세에서 101세까지가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였다고 말한 후 103세에 세상을 떠났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무술년 개띠들의 새로운 앞날에 세로운 인생의 향연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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