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고]우리들 속에 살아나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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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우리들 속에 살아나는 1987

박현우 (심리상담사)
기사입력 2018.01.1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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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신문]박종철 열사 추모 31주기를 하루 앞둔 날, 경찰청장과 주요간부들이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을 방문하여 헌화를 했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우선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박종철 열사의 하숙집이 있었던 골목에는 박종철 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이 실감 난다.
 
영화 [1987]을 두 번 봤다. 처음 봤을 때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에 북받쳐 며칠 동안 몸살을 앓았다. 1987년을 살아온 이들은 각자의 경험으로 인한 기억과 소회가 있을 것이다. 30년 전 그 항쟁의 거리에서 스무 살이었던 남편과 나는 처음 만났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젊음에게 요구되었던 시대적 소명 속에서 그곳으로 향했던 우리들의 선택이 있었으니 계획된 우연이었다. 종로에서, 광화문에서, 신촌에서, 곳곳을 다니며 외치고 또 외쳤다. ‘종철이를 살려내라’ ‘한열이를 살려내라’ ‘호헌철폐 독재타도. 열사들의 또래 86학번인 우리들은 그들 꽃다운 젊음이 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희생당한 것에 울분을 토했고, 영화의 장면마다 그 속에 우리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당시 열사들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 그 시절을 마주하니 오만가지 감정이 마음을 힘겹게 누른다. 박종철 열사의 어머니가 지금 아니면 영영 만질 수 없으니 마지막으로 자식 손이라도 한 번만 만져보게 해달라고 절규할 때, 아버지가 유골을 뿌리면서 한줌 재로 변해버린 자식을 부여잡고 차마 보내지 못해 얼음 물 속에서 오열할 때는 부모의 마음으로 학살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학살자들은 끝내 반성하지 않았다.
 
영화의 제작진들은 치열하게 싸우신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자고 시작을 했다고 한다. 우리들의 1987은 기획된 주인공이 세상을 이끌어 간 것이 아니라 언론인, 검찰, 성직자, 의사, 교도관, 학생, 가족, 시민들 등 모든 이들이 어우러져 주인공이 되어서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연희가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라며 데모하는 것을 질책했을 때 한열이가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마음이 너무 아파서라고 대답을 한다. 그랬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학생들은 남달리 정의로웠거나 웅대한 신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대상황 속에서 젊은이로서의 당연한 태도가 그들을 거리로 이끈 것이다. 옳지 않음이 너무나 명징한 현실에서 옳음을 추구해야한다는 청춘들의 당위성이었다. 부검을 끝까지 관철시킨 검사도, 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준 교도관도, 마지막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준 기자도 대단한 영웅심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의 사명감으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인터뷰에서 의사이니까”, “검사이니까”, “기자이니까라고 이야기를 한다.
나는 특히 영화 속 언론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각별한 느낌이 들었다. 애초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때 그들 모두는 좋은 기자가 되고 싶다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직업적 윤리의식을 지닌 사명감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그 시절 기자들에게서 그런 기자정신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이다. 일부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했고 그 방편으로 언론을 탄압하고 길들였던 나쁜 정권 때문인 것이다. 언론에 재갈을 물려 부박하게 받아쓰기나 하도록 만들지 않았다면, 그들이 추구하고자했던 기자정신을 올곧게 지킬 수 있었다면, 군부독재가 그토록 잔인하게 악행을 저지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80년대의 언론 탄압과 통폐합의 실질적 주도자이자 기자들에게 염라대왕으로 악명을 떨치며 일명 강전무라고 불리던 보안사 언론반장 이상재가 충남 출신이라는 것은 참 기분 나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와 함께 부역했던 자들도 각자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역사 앞에 솔직한 자기고백과 반성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라도 주어지지 않겠는가.
 
현재 그리고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는 어느 순간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과정이고 연속적인 시점이다. 즉 맥락이 있는 것이고 그 속에는 의도가 있다. 예컨대 어떤 이가 어떤 의도로 어떤 과정을 거치며 살아왔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매순간 삶의 방향과 태도를 선택하고 결정한다. 대세를 쫒아서 수시로 삶의 지향을 바꿔온 이도 있을 테고 바보같이 한 길만을 걸어온 이도 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30년이 흐른 현재 속에서 우리들은 함께 1987을 되살려야 한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지만, 각자가 견지해온 입장과 처지는 다를 수 있지만, 종철이를 한열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지금 여기 우리들 마음속에서 살려내어야 한다. 그들을 잊지 않고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현재를 반성하는 거울삼아 우리들이 잘!! 살아가는 것이 그들을 살려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뜨거운 눈물, 고된 땀방울, 아픈 추억, 짧았던 젊음과 피맺힌 그 기다림이 헛된 꿈이 아니었음, 우리들은 그날이 오면’, 그래 내가 네가 우리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불어 성장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 날은 언제나 바로 지금 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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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싸나이
    • 공감합니다. 그 당시 기자들은 기레기가 아닌 각자 사명감을 가진 진정한 기자였죠 ~~ 언론통폐합 등 언론에  재갈을 물린 이상재 라는 인물이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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